(파이어버드(FIREBIRD / 불새) ∥ 에스토니아+영국 합작 퀴어영화, 로맨스, 실화 바탕, LGBTQ+ ∥ 개봉 : 2022.11.17. ∥ 107분 ∥ 18+등급 ∥ 원작 : ‘세르게이 페티소프’의 회고록 ‘The Story of Roman’ ∥ 각본 : 피터 리베인 / 톰 프라이어 ∥ 감독 : 피터 리베인(Peeter Rebane) ∥ 출연배우(등장인물) : 톰 프라이어, Tom Prior(세르게이 세레브렌니코프) / 올렉 자고로드니, Oleg Zagorodnii(마티예브 로만 알렉세예비치) / 디아나 포자르스카야, Diana Pozharskaya(루이자) / 제이크 헨더슨(볼로댜) / 마구스 프란겔(소령) / 니콜라스 우데슨(대령) 등)
‘파이어버드’는 소련(러시아)에서 연극계의 전설이었던 세르게이 페티소프(1952~2017)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에스토니아 감독인 피터 리베인과 영국 배우 톰 프라이어(세르게이 역)가 2017년 실제 인물인 세르게이를 인터뷰한 만큼 각본엔 그의 사랑 이야기를 존중한 흔적이 엿보인다. 후반 작업이 코로나로 인해 오래 걸리고, 그동안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다. 로만 역을 맡은 올렉 자고로드니는 우크라이나 배우이다.
1977년 소련이 점령한 에스토니아 서부의 합살루 공군기지에서 군 복무 마지막 주를 견뎌내고 있는 세르게이는 제대하고 배우가 되고자 한다. 대령이 세르게이의 잠재력을 인정하고 계속 기지에 남길 권유하지만 세르게이는 그럴 생각이 없다.
절친인 볼로댜와 기지에 있는 군인들은 세르게이가 그와 어릴 때부터 친구인 루이자와 사귀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의대생인 루이자는 휴학하고 대령 밑에서 비서로 일하고 있다. 루이자는 세르게이를 좋아하지만 세르게이는 루이자를 친구로만 생각한다.
세르게이는 기지에 새로 부임한 최고의 전투기 조종사 로만 중위에게 첫눈에 반한다. 세르게이는 로만의 수행원으로 배정된다.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 로만은 세르게이 또한 사진에 관심이 많다는 걸 알게 된다. 로만은 세르게이에게 사진 현상법을 가르치기 위해 암실에서 그의 손을 세르게이의 손 위에 얹는다. 그러면서 둘 사이에 성적 긴장감이 고조된다.
세르게이가 로만에게 한 번도 발레를 본 적이 없다고 말하자 로만은 스트라빈스키의 파이어버드 초연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왕자가 잡아서 풀어준 마법의 새에 관한 신화를 바탕으로 한다. 나중에 새는 사악한 불사신으로부터 왕자를 구출하기 위해 돌아온다.
소련은 1934년 ‘동성 간의 성적 관계는 5년간 수용소에 수감하어 처벌한다.’는 ‘형법 제121조’ 통과시킨다. 1977년 당시 동성애를 범죄로 규정하는 위험한 상황에서도 세르게이와 로만은 열정적인 사랑에 빠진다.
아슬아슬한 이들의 사랑은 로만이 일병인 누군가와 부도덕한 행위를 했다는 익명의 보고서가 접수되면서 멈춰진다. 소령에게 심문을 받은 로만은 두려움에 휩싸인 채 잔뜩 긴장하여 세르게이에게 이 사실을 알리곤 밀어낸다. 로만을 강하게 의심하며 주시하는 소령의 눈을 피하기 위해 로만은 결국 루이자와 사귀기 시작한다.
1년 후 세르게이는 모스크바에 있는 연극 학교에 다니고 있다. 로만과 결혼하게 된 루이자는 세르게이를 초대하기 위해 학교에 찾아온다. 로만이 자신의 성적 지향을 숨기고 루이자와의 결혼을 선택한 것이다. 결혼식에 참석한 세르게이는 로만에게 모스크바에 함께 가자고 매달린다. 그런 세르게이에게 로만은 루이자의 임신 소식을 알리며 거절한다.
루이자와 결혼했지만 로만은 세르게이를 계속 그리워한다. 4년 후 연극 배우가 된 세르게이를 만나기 위해 로만이 극장으로 찾아간다. 그러면서 둘의 만남이 다시 시작된다. 세르게이는 로만과 동거를 시작한다. 둘만의 행복도 잠시 루이자가 아들 세요자를 데리고 로만과 새해를 맞이하게 위해 방문한다고 하자 로만은 부랴부랴 세르게이의 짐을 모두 숨긴다. 그 모습을 보며 세르게이는 참혹한 슬픔을 느낀다.
로만, 루이자, 세요자와 함께 새해를 맞이하면서 세르게이는 그들의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위해 로만의 곁은 떠나기로 결심한다. 세르게이가 떠난 후 로만은 절망에 빠진다. 루이자는 로만이 과거에 찍었던 사진을 보며 두 사람의 관계를 어렴풋이 짐작한다. 루이자가 활짝 웃으며 포즈를 취할 때 로만은 그녀 뒤에 서 있는 세르게이를 선명하게 보이도록 초점을 맞추고 사진을 찍었던 것이다.
세르게이와 루이자 사이에서 어떤 선택도 할 수 없었던 로만은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더 이상 상처를 줄 수 없어 아프가니스탄으로 떠나고, 한 달 후 전사한다. ‘(로만의 편지) 세르게이. 내가 유일하게 자유를 느끼는 곳을 택해야 했어. 하늘. 날 기다리지 말아줘. 날 잊어. 항상 널 생각할게, 세르게이, 어떤 삶이 펼쳐지든 항상 함께 할게.’
세르게이는 루이자를 찾아간다. 루이자는 세르게이에게 분노를 폭발하며 울부짖는다. “(루이자) 내 남편이랑 자는 사이라고? 네가 어떤 존재였는지 알아? 넌 아무것도 아니었어!” “(세르게이) 네가 느낀 감정과 내가 느낀 감정은 같아.” 세르게이에게 애증을 갖고 있는 루이자는 세르게이를 부둥켜 안아준 후 로만이 찍었던 사진을 세르게이에게 건네준다.
파이어버드를 혼자서 보러 간 세르게이는 흐르는 눈물을 참지 못한다. 이후 세르게이는 루이자와 다시는 평생 만나지 않는다. 형법 제121조는 1993년부터 2013년까지 폐지되었지만 푸틴 대통령은 동성애에 대한 긍정적인 묘사를 금지하는 ‘동성애 선전 금지법’을 제정한다.
영화를 보는 동안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2005)’ ‘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8)’과 드라마 ‘길 위의 연인들(2023)’이 생각났다. 동성애가 불법이던 시절 여성은 그들의 사랑을 위한 희생물이 되곤 했다. 자신이 게이임을 감추기 위해 여성과 결혼하고 이성애자인 척 살아가지만 극 속에서 이들의 배우자는 결국 남편의 불륜을 알게 된다.
동성애가 불법이던 시절을 다룬 영화나 드라마에서 위험한 사랑, 여성과의 결혼, 함께할 수 없는 상황, 비극적 결말 등이 자주 그려졌기에 어쩌면 ‘파이어버드’가 진부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파이어버드가 회고록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에 이런 진부함이 오히려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사실 전 세계의 성소수자들은 너무 오랜 세월 동안 고통과 고문을 겪어왔기에 이들의 비극적인 삶은 비슷할 수밖에 없다.
아마도 소련군의 동성애를 다룬 파이어버드를 2022년보다 5년 정도 더 일찍 개봉했더라면 큰 반향을 일으켰을지도 모른다. 여전히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억압하고 커밍아웃을 할 수 없는 환경에서 사는 성소수자가 많다는 것이 슬프고 안타깝다.(5점 만점에 4.3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