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감예보(体感予報, Taikan Yoho, My Personal Weatherman) ∥ 일본BL드라마, 로맨스, LGBTQ+ ∥ 8부작 ∥ MBS 2023.8.11.~10.13. ∥ 19+등급 ∥ 원작 : 닛케 타이노(鯛野ニッケ)의 만화 "Taikan Yohou(体感予報)" ∥ 각본 : 다카하시 나츠키(高橋名月) / 후나비키 신주(船曳真珠) ∥ 감독 : 카토 아야카(加藤綾佳) ∥ 출연배우(등장인물) : 히구치 코헤이, 樋口幸平, ひぐち こうへい(세가사키 미즈키) / 마시코 아츠키, 増子敦貴(타나다 요) / 마츠무라 사유리, 松村沙友理(만주) / 미즈이시 아토무, 水石亜飛夢(만주 남편) 등)
‘체감예보(体感予報)’는 직접적인 NC씬을 보여주지 않는 데도 굉장히 선정적인 느낌을 주는 BL드라마다. 과감한 스킨십과 열정적인 키스로 성적 에너지가 넘쳐난다. 어떤 특별한 스토리가 있다기보단 순전히 히구치 코헤이 & 마시코 아츠키의 케미스트리로 이끌어간다.
● 줄거리
요는 가사 노동을 마치면 하루 종일 일기예보만 해주는 채널을 틀어놓고 만화를 그린다. 남성 기상캐스터는 세가사키다. 세가사키는 요가 세상에 존재하는 얼굴 중 가장 좋아하는 조형물이다. 만화를 그리면서 요는 필명이 ‘만주’인 만화가와 자주 통화한다. 만주는 요 덕분에 1년 전부터 일기예보를 시청하기 시작했다. 첫눈에 세가사키에게 반한 만주는 세가사키의 열렬한 팬이 됐다. 하지만 요는 만주에게 세가사키와 살고 있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3년째 같이 살고 있는 세가사키는 퇴근하고 오면 인사도 없이 밥 달라는 말만 한다. 세가사키는 요가 만주에게 인사할 틈도 없이 통화 중인 요의 휴대폰을 다짜고짜 끊고는 누구냐고 물어본다. 친구라고 하자 더이상 물어보지 않는다. 세가사키는 말을 두 마디 이상 거의 하지 않고, 하더라도 매번 지나치다 싶을만큼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고 얘기한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
며칠 동안 계속 비가 내리자 요는 짜증이 올라온다. 문득 세가사키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같이 산 지 얼마 안 되어 관계를 마친 세가사키는 앞으로 맑은 날 전날에만 할 거라는 말을 했다. 왜일까? 아마도 오늘 일기예보에서 내일은 맑겠다고 했으니까 세가사키는 저녁밥을 먹은 후 요를 안을 것이다.
‘맑음’이라는 단어는 어두운 곳에서 끈적하게 이루어지는 ‘그것’과는 상반되는 이미지인데도 마치 야한 말처럼 요의 머릿속에 박혀 있다. 세가사키의 입에서 ‘맑음’이라는 단어가 들리면 야릇한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는 걸 그는 모를 것이다. 아마 평생 생각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애인도 아닌 자신과 아무렇지도 않게 성관계를 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
요는 세가사키의 제안을 받아들인 그 순간부터 ‘계약 노예’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뭐든 시키는 대로’ 안에 성관계도 포함된다고 생각한 요는 성관계도 어쩔 수 없는 일로 받아들인다. 그러면서 요는 또 생각한다. ‘왜 맑은 날 전날에만 하는 거지?’
장마가 시작됐다. 한동안은 같이 자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그래도 혹시 참을 수 없어지면 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요는 저녁을 준비하며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요 며칠 세가사키는 늦게 퇴근하고 있다. 출근할 때는 저녁 준비를 하지 말라고 하고 나간다.
일기예보를 보며 요는 깜짝 놀란다. 새로운 기상캐스터가 젊고 섹시한 여성이다. 히요시는 가슴골이 훤히 보이는 옷을 입고 있다. 장마는 한동안 계속될 거란다. 당연히 세가사키는 요를 안아주지 않는다. “오늘도 늦을 거야.”라는 문자를 받은 요는 화면 속에서 실실거리며 웃는 세가사키를 보자 짜증이 확 올라온다. 세가사키가 너무 얄미워 보인다.
며칠 동안 새로운 기상 분석 시스템에 적응하기 위해 야근했던 세가사키는 히요시의 환영식을 해주자는 것도 거절한 채 요에게로 달려간다. 요의 방문을 여니 요가 술에 취한 채 자위를 하곤 엎드려 있다. “난 욕정을 참고 있는데 이 야한 상황은 뭐야?” 세가사키는 바닥에 널브러진 휴지를 줍는다.
세가사키의 늦은 퇴근과 계속된 장마로 그것도 하지 못해 욕구불만인 데다 히요시의 등장으로 질투가 난 요는 술김에 세가사키를 향해 취중진담을 쏟아 낸다. “에로 만화로 성공해서 나가버릴 거다. 너는 날 좋아하지 않고 그저 편리한 노예로만 생각한다. 그렇게 하고 싶으면 옆에 있는 캐스터랑 해라. 나한테는 그렇게 웃어준 적 없지 않냐! 너 진짜 싫다. 왜 비 오는 날에는 안 하냐?”
그런데 맑은 날에만 했던 이유가 너무 허무하다. 첫 관계 후 요가 “침대 시트 어떡하지. 잘 마르려나? 한 장밖에 없는데.”라고 걱정하길래 그랬던 거란다. 세가사키가 묻는다. “그런데 말이야. 아까 그 말투는 뭐야? 좋아하지 않는다고? 나가 살겠다고? 내 프러포즈를 받아놓고 어떻게 그런 말이 나와? 널 먹여 살리겠다는데 당연히 프러포즈지.” 이 남자 뭐지? 계약 노예라고 생각했는데 프러포즈라니?
세가사키가 다시 묻는다. “그런데 넌 내가 싫어? 그런 거야?” 아니라고 해야 하는데 입밖으로 그 말이 나오질 않는다. 세가사키는 결국 요가 자신을 싫어한다고 생각하곤 방을 나가버린다. 과연 요와 세가사키는 어떻게 될까?
● 감상
◎ ‘히구치 코헤이 & 마시코 아츠키’의 케미스트리가 엄청나다. 둘이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그냥 야하다. 별 스토리도 없는데 8회까지 지루할 틈 없이 시선을 장악한다. ‘히구치 & 마시코’는 완전히 캐릭터 그 자체가 되어 ‘사가사키 미즈키 & 타나다 요’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성적에너지와 끈적끈적한 관능미로 드라마 전체에 에로틱한 분위기가 넘쳐난다.
○ 육체적 애정은 세가사키 & 요의 로맨스에 설득력을 불어넣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파블로프의 개’ 실험처럼 ‘맑음=성관계’와 연합되어 야하고 끈적끈적한 단어가 돼버린다. 감각적인 애무와 선정적인 키스는 관능적이고 에로틱하다. NC씬은 두 사람의 그리움과 사랑을 상징적으로 표현해주기 때문에 음란하다기보단 감각적이고 매혹적이다. 어떻게 보면 줄거리 자체가 성관계를 갖는 방향으로 세밀하고 정교하게 짜여져 있는 느낌이다.
○ 처음엔 본인이 ‘계약 노예’라서 ‘어쩔 수 없이 그것도 해야 한다’고 표현해서 요가 성관계를 싫어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반전이다. 요는 그걸 좋아한다. 맑은 날 전날에만 성관계를 하겠다는 세가사키의 특이한 규칙 때문에 요는 장마가 길어지자 욕구불만에 시달리며 성적 좌절감을 느낀다. 그런데 세가사키가 왜 이런 규칙을 만들었는지 알게 되자 날씨와 상관없이 언제든 할 수 있도록 시트를 3장이나 사서 세가사키에게 안겨준다. 추가로 여름용 시트까지 구입한다. 정말이지 요염하면서도 귀여운 요 때문에 웃음이 빵 터졌다.
◎ 세가사키 때문에 두 번 심장이 욱신거렸다. 개인적으로 드라마를 볼 때 이런 욱신거림이 느껴지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띠오럽(Theory of Love)(2019)'을 그토록 좋아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카이 때문에 우는 떠드를 볼 때마다 매번 심장이 욱신거려서 울고 싶을 때면 보곤 하는 드라마다. 체감예보에서도 두 장면에서 그랬다.
○ 쉬는 날 세가사키는 요와 요코하마로 놀러 나간다. 요를 너무 좋아하는 세가사키는 요가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걸 다 해준다. 그런데도 둔감한 요는 세가사키에게 “따로 가고 싶은데 있으면 편하게 가도 돼. 혹시 나 때문에 불편하면 난 알아서...”라고 말해버린다. “그렇구나. 싫어하는 사람이랑 휴일을 보내서 별로야?”라고 묻는 데도 제대로 답변을 하지 못하는 요를 보며 세가사키는 상처받는다. 결국 세가사키는 갑자기 볼일이 생각났다며 5시에 이 장소에서 만나자고 하고는 다른 곳으로 가버린다. 정말이지 둔해도 너무 둔한 요가 야속하게 느껴졌다.
○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깬 세가사키는 요가 자신을 버리고 나가버렸을까 봐 걱정하여 반사적으로 문을 향해 달려간다. 빨래통을 발견한 세가사키는 혹시나 해서 비를 맞으며 옥상으로 올라간다. “태풍이 온다고 했는데 빨래 걷는 걸 깜빡했어. 서둘러 나가려고 했는데...” 세가사키의 귀에는 ‘서둘러 나가려고 했다’는 말만 들린다. “나가려고 했다고? 마음대로 나가지 마. 난 네가 없으면 제대로 숨을 쉴 수 없어.”라며 세가사키는 울 것 같은 표정을 짓는다. 이때 심장이 욱신 아파 왔다.
세가사키에겐 도대체 어떤 상처가 있는 걸까? 세가사키의 회상은 대학시절 자신이 꼭꼭 감춰온 힘든 모습을 요만이 알아봐 줬다는 것 외엔 다른 정보가 없다. 세가사키가 이런 성격이 돼버린 배경이 궁금한데 끝까지 보여주지 않아 아쉽다.
◎ 세가사키&요의 로맨스는 몇 가지 우려할만한 점이 있다. 세가사키는 요가 스스로를 ‘계약 노예’라고 생각할 만큼 요를 하인처럼 대하고 요의 자율성을 훼손한다. 요의 가사 노동을 고마워하거나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세가사키의 소유욕은 점점 통제 불능 상태가 돼버린다.
세가사키는 만주를 만나기 위해 외출하려는 요를 가지 못하게 통제한다. 의식주 비용을 세가사키가 대준다고 해서 요의 자율성을 억압할 권리까지 주어지는 건 아니다. 세가사키의 소유욕은 요를 친구로부터 고립시키려는 행동으로 나타난다.
게다가 외출한 요의 가방에 위치 추적기를 넣고 미행할 정도로 강박적인 행동을 하기도 한다. 요는 분명히 편집자를 만나러 나간다고 했다. 그런데도 세가사키는 막무가내로 요의 일터에 쳐들어가서 요를 끌고 나온다. 요에 대한 신뢰가 전혀 없는 것도 문제지만 요가 하는 일을 전혀 존중하지 않는 것도 문제다. 질투로 눈이 먼 세가사키의 편집증과 스토킹은 도를 넘어선다.
세가사키는 심지어 질투와 불신에 휩싸여 “요, 어떡하면 나만의 것이 될래?”라는 말을 하며 요를 묶어버리기까지 한다. 그야말로 사랑에 미친 위험한 집착광공이다. 세가사키의 정서적, 억압적 학대는 건강한 사랑이라고 볼 수 없다.
○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요는 건강하지 못한 세가사키의 역기능적 행동을 ‘토라져서 어리광 피우는 걸’로 받아들인다. ‘아무래도 이 사람, 너무 위험해. 불안하다고 사람을 묶어버리다니 정말 위험한 사람이야. 하지만 그걸 기뻐하는 나도 미친 것 같아.’라며 좋아하기도 한다. 세가사키의 소유욕과 질투로 인한 통제는 계속되지만 요는 세가사키를 다루는 방식을 조금씩 터득해간다.
세가사키가 말한다. “내가 집에 돌아오면 통화 중이건 뭘 하건 간에 현관까지 마중 나와. 그리고 잘 다녀왔냐고 해.” 요는 이제 세가사키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안다. 그만큼 그들의 관계에 자신감도 생긴다. 요는 세가사키가 원하는 말을 해준다. “잘 다녀왔어? 일하느라 수고했어. 오늘치야. 현관 앞은 아니지만.” 요가 세가사키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세가사키에게 확신시켜 주는 한 세가사키는 기꺼이 요가 원하는 대로 해줄 것이다.
‘체감예보(体感予報)’는 건강하지 못한 역기능적 사랑을 보여주지만 세가사키와 요는 점차 서로에게 적응해가면서 그들만의 방식으로 로맨스를 유지하는 방법을 배운다. 스토리는 별 것 없지만 그들만의 화끈한 로맨스는 재미있다.(5점 만점에 4.3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