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의 저주를 풀어줘(Let Free the Curse of Taekwondo) ∥ 한국BL드라마, 로맨스, LGBTQ+ ∥ 8부작 ∥ 2024.10.17.~11.07. ∥ 15+등급 ∥ 각본&감독 : 황다슬 ∥ 출연배우(등장인물) : 이선(신주영) / 김누림(이도회) / 장연우(하현호) / 유하복(도회아빠) / 윤지원(서강은) / 장솔(황병규) / 유태이(남성민) / 한소현(나민지) / 함상혁(광모) 등)
‘태권도의 저주를 풀어줘’는 ‘블루밍’ ‘투마이스타’ ‘너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를 연출한 황다슬이 직접 각본&감독을 맡은 작품이라 기대가 컸다. 너무 큰 기대를 갖고 봐서인지 그 기대에 못 미친 감은 있지만 그렇더라도 황다슬의 이름값은 했다고 본다.
과거에 한국은 훈육이라는 이유로 폭력이 용납되는 시절이 있었다. 특히 운동을 가르치고 배우는 곳은 더욱 심했다. 작은 시골 마을에 사는 도회는 태권도장을 하는 아버지에게 어릴 때부터 태권도를 배우며 자랐다. 전국 대회에 나가 상을 휩쓸 정도로 재능이 있었지만 아버지의 폭력이 너무 싫어서 태권도를 그만뒀다.
도회는 아버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한다. 사투리도 쓰지 않고 전교에선 항상 1등을 도맡아 한다. 그런 도회의 암울하고 폭력적인 가정 생활은 일산에 사는 주영이 도회의 아버지에게 태권도를 배우기 위해 세입자가 되면서 바뀐다.
도회는 주영의 식사를 챙겨주고 훈련도 도와준다. 어느 순간 도회는 주영 앞에서 얼굴이 빨개지고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인다. 친구가 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낯선 주영이 도회에게 그 이상의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도회가 주영에게 말한다. “성공할 수 있겠지? 모두 다 저주에 걸린 것 같아. 여기서 벗어나고 싶어.” 동네 아이들 모두 아버지에게 맞아도 신경 쓰지 않았던 도회는 아버지에게 맞아 멍이 든 주영의 모습을 보며 속상하고 화가 난다. “미안. 나는 이해가 안 돼서 그래. 사람이 사람을 때린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 그런 도회를 보며 주영은 도회에게 키스한다.
주영은 도회에게 고백한다. “나, 너 좋아. 나도 너 엄청 신경 쓰여.” 주영은 도회를 보며 더욱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런 주영에게 도회도 고백한다. “네가 그런 애라서 내가 너 좋아하는 거야.”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도회와 주영의 사랑은 깊어지지만 도회 아버지의 폭력적인 그림자는 항상 그들 위에 칼날처럼 걸려 있다.
태권도학과 수시전형을 보러 갔던 주영은 합격통지서를 들고 수능 전날 도회에게 돌아온다. 새벽 일찍 수능을 보러 나가던 도회는 아버지에게 맞고 있는 주영을 보게 된다. 도회는 아버지를 말리는 대신 경찰에 신고하고 수능을 보러 간다.
곧이어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를 들린다. 멈칫하던 도회는 내리는 눈을 맞으며 시험을 보기 위해 발걸음을 옮긴다. 신경이 온통 주영에게 가 있던 도회는 수능 시험을 보다 말고 뛰쳐나와 집으로 달려간다. 주영은 이미 부모님에게 끌려간 후다. 도회는 아버지에게 왜 주영을 때렸냐고 따지지만 아버진 오히려 도회와 주영을 비난한다. 도회는 아버지를 죽이고 싶은 마음이 일어날 정도로 분노에 휩싸인다.
그렇게 12년이 흐른다. 31살인 주영은 관장도 국가대표도 되지 못했지만 동기가 운영하는 태권도장에서 태권도를 가르치고 있다. 그 이후 도회를 만난 적은 한 번도 없다. 주영은 도회가 떠난 12년 동안 계속 도회 아버질 찾아가 돌봐왔다.
어느 날 관장이 주영을 찾아와 태권도장을 물려받으라고 하곤 내려간다. 주영이 고민하던 중에 관장이 타고 내려가던 고속버스가 사고가 나서 관장이 사망한다. 장례식장에서 주영과 도회는 12년 만에 다시 만난다. 도회는 변호사가 된 현호와 함께 나타난다.
‘태권도의 저주를 풀어줘’의 1~2회는 이야기의 주요 전제, 갈등, 로맨스를 확립하기 위해 매력적으로 흐른다. 도회의 아버진 신체적 폭력을 휘두르지만 주영의 부모는 정서적으로 학대한다. 도회와 주영은 모두 가정환경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
학구적이고 진지한 도회의 우울한 세상은 낙관적이고 쾌활한 주영의 밝은 성격과 날카롭게 대조된다. 도회는 자신의 삶에 새로 들어온 주영과 거리를 두려 하지만 한 공간에서 함께 식사하고 함께 훈련하면서 빠르게 친밀해진다. 아이스크림을 함께 먹고, 비 오는 날 우산을 들고 마중 나가고, 관장에게 맞아 화풀이하려는 동네 애들에게 폭력을 당하는 등 도회와 주영은 많은 것을 함께 겪는다.
이선과 김누림의 케미스트리는 사랑스럽다. 어색한 우정에서 달콤하고 순수한 첫사랑으로 변화하는 둘의 모습이 매력적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3회가 끝나갈 무렵 줄거리는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도회가 아무런 설명 없이 주영을 무시하면서 무려 12년이나 건너뛰어 버린 것이다.
“도회는 나와 상관없는 문제로 수능을 망쳐 또 한 번의 중요한 시기를 가진다고 했다. 나는 조용히 기다렸다. 그날이 끝나길. 그날이 끝나고 못다 한 이야기를 하려고. 그러나 우린 그날 이후 끝까지 서로를 볼 수 없었다.” 주영의 독백을 들으면서도 이 상황이 잘 이해되지 않아 3회와 4회를 반복해서 보기도 했다.
둘은 다시 만난 후 12년 전 수능이 있던 날에 대한 이야길 한다. 도회는 폭력을 못 본 척했다는 죄책감으로 살아왔다는 이야길 한다. 주영은 자신 때문에 수능을 망쳤으니 무릎 꿇고 빌게 만들었어야 하지 않냐고 반문한다.
“누가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녜. 나 너밖에 생각이 안 나. 나랑 네가 계속 같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 뭐든 열심히 하려고 했던 그때. 가진 거 아무것도 없어도 그때가 가장 행복했어. 누군가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란 것도 그때가 처음이고. 서울 같이 가자며?” 주영의 말이 끝나자마자 눈이 내린다. 그 순간 도회는 12년 전 주영과 함께했던 일들이 모두 떠오른다. 도회가 주영에게 키스하자 12년간 그들에게 멈춰있던 시간이 다시 돌아가기 시작한다.
‘태권도의 저주를 풀어줘’에서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주영이 도회의 아버지를 계속 돌봐온 방식이다.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나한텐 끔찍하고 괴롭고 몸서리치게 싫은 일들을 넌 네 잘나고 멋진 도덕적 신념 지키자고 이기적으로 굴고 있잖아.” 도회가 주영에게 한 말이다.
도회의 아버진 자신이 사랑하는 도회에게 폭군이었고, 주영 또한 태권도를 배우는 동안 수없이 폭력을 당해야 했다. 12년 전 주영이 도회와 헤어져 있어야 했던 원인 또한 도회 아버지의 폭력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주영은 마치 아들처럼 살뜰하게 도회 아버질 돌봐왔다. 관장이 도회 아빠이기 때문이라고 하기엔 이해하기가 힘든 부분이다. 이 부분을 설득 시키기엔 너무 불친절한 서사다.
게다가 후반부로 갈수록 주인공인 도회가 주영보다 서브남인 현호와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게 안타깝다. 현호는 고등학교 때 자신을 보고 부끄러워하는 도회를 보며 도회를 피하기 시작했고 친구 사이가 어색해졌다. 현호는 자신이 도회를 좋아한다는 걸 인지하지 못한 채 도회를 괴롭히던 아이들과 함께 어울렸다. 하지만 자신이 도회를 좋아한다는 걸 깨달은 순간부터 현호의 마음은 한결같았다.
현호는 자신이 다니는 대학교에서 도회를 만난 그 순간부터 줄곧 도회의 곁을 지키며 도회를 돌봐왔다. 도회가 자신을 봐주길 참을성 있게 기다려왔다. 하지만 주영이 나타나자 현호의 바람은 무참히 깨지고 만다.
현호가 “옛날로 돌아가는 거 싫다며?”라고 묻자 도회가 답한다. “돌아간 게 아니라 멈췄던 때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야. 술친구가 돼줄 순 있는데 집에 그만 와. 불편해.” 이 말에 현호의 가슴이 얼마나 찢어질 듯 아팠을까? 현호는 마치 주영에게 질투를 유발하는 캐릭터일뿐이라는 듯이 질척거리지 않고 깔끔하게 물러난다. 장연우의 잘생긴 얼굴과 연기 때문일까? 현호 캐릭터가 참 매력적이어서 호감이 간다.
‘태권도의 저주를 풀어줘’는 행복한 분위기로 마무리한다. 여전히 줄거리 중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지만 ‘황다슬’의 섬세한 연출은 벨드의 품격을 떨어뜨리지 않는다.(5점 만점에 4.2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