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기류(Gray Shelter) ∥ 한국BL드라마, 로맨스, LGBTQ+ ∥ 5부작 ∥ 2024.04.11.~04.25. ∥ 15+등급 ∥ 극복&연출 : 이손음 ∥ 출연배우(등장인물) : 이재빈(이윤대) / 장우영(차수혁) / 김병우(경우) / 임현석(도훈) / 조정민(세운) / 이도윤(정환) / 이슬기(지희) / 김신용(수혁아빠) / 강미녀(수혁엄마) / 윤동하(윤대아빠) 등)
‘회색기류(Gray Shelter)’는 생존에 관한 이야기다. 수혁과 윤대는 가정폭력 생존자다. 수혁은 정서적, 경제적 폭력의 피해자이고, 윤대는 신체적, 정서적 폭력의 피해자이다. 윤대와 수혁의 아픔이 어두운 톤으로 전개되면서 피부 속으로 파고 들어와 감정적 혼란을 일으킨다. 형제가 될 뻔했던 둘은 서로를 필요로 하면서도 지독한 상처로 인해 서로를 밀어낸다.
● 줄거리
수혁은 청소업체에서 일한다. 수혁이 에어컨 청소를 하러 간 집에 윤대가 있다. 에어컨을 분해해야 하는데 장비가 없어서 내일 다시 오겠다는 수혁에게 윤대는 다른 사람을 보내라며 화를 낸다.
6년 전이다. 수혁엄마와 윤대아빠가 결혼하게 돼서 수혁은 윤대를 처음 만난다. 윤대는 사람 패는 새아빠가 너네 아빠보다 나으냐며 수혁에게 적대감을 드러낸다. “뭘 해도 낙원은 못 되니까. 그러니까 협조를 해줘.” 수혁이 자조적인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그런 수혁 앞에서 윤대는 오히려 얌전해진다.
경우와 소개팅에 나간 윤대가 술에 취하자 수혁이 윤대를 데리러 온다. 수혁은 멍 자국이 난 윤대의 몸을 살핀다. 다음날 수혁의 방에서 깨어난 윤대는 숨어 있던 창고로 돌아간다. 수혁이 윤대를 찾으러 온다. “가자, 집에.” “왜? 아빠가 나 찾아서 데리고 오래? 마저 팬다고?” 수혁은 슬리퍼만 신고 도망 나온 윤대에게 신발을 벗어준다. 윤대는 투덜거리면서도 수혁의 신발을 신는다. “앞으로 내 방에서 자. 너네 아버지 나한테 쪽팔린 꼴 보이기 싫어서 안 그러실 거야.”
앞장서서 성큼성큼 걷는 윤대의 뒤를 수혁이 뒤따른다. 윤대는 그런 수혁에게 빨리 오라며 짜증을 낸다. “너, 나 싫어하잖아!” “어쩌라고? 알면서 왜 데리러 와?” 수혁은 집에 들어가기 전에 윤대의 얼굴에 난 상처에 연고를 발라준다. 그리곤 밴드를 붙여준 후 두 손으로 윤대의 얼굴을 감싼다. “너 되게 잘생겼다.”라고 말하는 수혁의 얼굴에 처음으로 웃음이 번진다. 윤대는 캐릭터 밴드를 확인하고서야 수혁이 장난친 걸 확인한다.
이후 윤대는 수혁의 신발을 신고 다닌다. 수혁은 윤대의 신발을 신고 다닌다. 윤대와 수혁은 서로의 부모를 닮지 않아서 다행이라며 서로를 위로한다.
대학을 휴학 중인 수혁은 편의점 알바, 야간 대리운전 등으로 쉴 틈이 없다. 수혁아빠는 이번에도 돈 좀 보내달라고 전화를 걸어온다. 수혁은 언제나처럼 아빠에게 돈을 부친다. 수혁은 지친 몸을 이끌고 터벅터벅 집으로 간다. 집에는 아빠가 보내온 썩은 사과 한 상자가 있다.
윤대는 대학교를 그만두기로 마음먹고 청소업체에 들어간다. 집으로 돌아가니 아빠가 보내온 사과 상자를 수혁이 버렸다. 윤대가 왜 물어보지도 않고 버렸냐고 화를 내자 도리어 수혁은 왜 썩은 사과인데도 버리지 않았냐고 묻는다. “너네 아빠지? 왜? 이제 와서 실패한 게 아까워? 다 썩어 빠진 과일이나 끌어안고 있을 만큼?” “선 넘지 마. 나 너한테 관심 없어. 너네 아버지나 너나 가족으로 생각한 적도 없고. 엄마한테 가족이 필요할 것 같아서 노력한 건데, 네 말이 맞아. 이번에도 실패한 것 같다.” 결혼은 불발되고 둘은 그렇게 헤어진다.
그리고 둘은 6년 만에 다시 만난다. 윤대가 컴플레인을 걸었지만 수혁은 다시 에어컨을 청소하러 간다. 수혁이 윤대아빠 소식을 묻자 윤대가 죽었다고 답한다. 수혁이 왜 연락 안 했냐고 묻자 도망간 건 네가 아니냐며 버럭 화를 내곤 수혁을 집에서 내쫓는다.
수혁엄마가 수혁을 찾아온다. 엄마는 수혁이 마련해준 집 보증금을 빼서 써도 되냐고 묻는다. 아빠에게 주려는 거다. 엄마는 지겹다고 하면서도 수혁처럼 노름에 빠진 아빠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수혁은 돈을 부쳐줄 테니 이사하지 말라고 한다.
수혁은 에어컨을 마저 청소하러 갔다가 윤대가 여자친구와 헤어진 걸 알게 된다. 이 사람은 뭘 해도 달라지지 않겠다는 걸 깨닫는 순간 도저히 감당이 안 돼서 헤어졌단다. 윤대에게 아빠가 죽었다는 말을 들은 수혁은 갈 곳 없는 윤대가 어디 있을지 몰라 걱정돼서 잠이 오지 않는다.
수혁은 윤대에게 전화를 걸어 윤대를 집으로 데리고 온다. 수혁의 서랍에서 콘돔을 발견한 윤대가 질투에 휩싸여 중얼거린다. “바쁘게도 산다. 연애도 하고.” 윤대는 수혁이 누굴 만나는지 캐묻는다. “여전하네. 나한테 관심 많은 거. 여자 아니야.” 윤대가 놀라서 묻는다. “그럼 남자야? 진짜 남자랑 잔다고?” “그러니까 오래 지낼 생각은 말라고.”
윤대는 수혁의 집에서 나갈 생각이 없다. 밖에 나가려던 윤대는 6년 전 수혁과 바꿔 신었던 신발을 발견한다. “나는 버리고 신발은 꼭 끌어안고 살았냐?” 그날 밤 술에 취한 윤대가 수혁을 불러낸다. 수혁이 윤대를 데려와 침대에 눕히자 윤대가 묻는다. “너, 신발 왜 안 버렸냐?” 그러게 말이다. 수혁은 왜 윤대의 신발을 6년이나 버리지 않고 가지고 있는 걸까?
● 감상
◎ 이재빈&장우영은 회색 빛깔에 어울리는 연기를 펼친다. 둘의 케미스트리도 좋다. 씹어먹듯 연기하는 이재빈&장우영 덕분에 이윤대와 차수혁이 느끼는 고통에 공감할 수 있게 된다.
◎ 타이틀 시퀸스가 인상 깊다. 회색은 중립적이고 차분하고 무심하면서도 불안한 느낌이 든다. 그림이 전반적으로 슬프고 우울하게 전개되지만 다행인 건 포옹으로 끝나는 마지막에서 희망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어쩌면 윤대와 수혁이 사랑으로 서로를 위로하며 서로의 대피소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보여주는 것 같다.
◎ 절박한 상황에 처한 수혁과 윤대는 처음부터 서로에게 끌린다. 서로는 헤어져 있는 6년 동안에도 계속 서로를 그리워한다. 비록 수혁과 윤대는 서로에게 고백하지 않지만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과 거친 말다툼 속에서 두 사람이 서로를 갈망한다는 걸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거친 말을 주고 받아도 “보고 싶었어.” “난 네가 필요해!” “사랑해!”라고 외치는 것처럼 들린다. 그들의 갈망은 신발로도 전달된다. 수혁은 6년간 윤대의 신발을 간직하고, 윤대는 수혁을 주려고 새 신발을 산다.
◎ 남들처럼 사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에 수혁은 “나는 그래도 ‘돌아갈 곳’이 있는 거. 남들처럼 사는 건 딱 그 정도.”라고 답한다. 윤대는 “이런 거 먹고 ‘집’에 같이 갈 사람이 있는 거.”라고 답한다.
○ 수혁은 ‘돌아갈 곳’을 찾는다. 수혁아빠는 도박 중독에 빠져 어릴 적부터 수혁을 방치했다. 수혁이 돈을 벌기 시작하자 아빠는 끊임없이 수혁에게 돈을 요구한다. 엄마조차도 수혁에게 기대고 의지한다. 대학교를 중퇴하고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며 삶에 지쳐 있는 수혁에게 부모의 정서적 학대는 계속된다.
부모에게 돌봄을 받아야 했던 수혁은 어릴 적부터 애정결핍과 좌절에 익숙해진다. 이 기억은 수혁의 무의식 속에 고스란히 남는다. 수혁은 타인에게 위로받거나 친밀하게 지내는 걸 기대하지 않는다. 기대해봤자 실망할 뿐이라는 걸 이미 깨닫고 포기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곤 누군가 먼저 다가오려고 하면 멈칫하면서 상대의 저의를 살피고 밀어낸다. 겉으론 꽤 독립적이고 이성적으로 보이는 수혁의 내면엔 관계에 대한 두려움과 긴장감이 자리 잡고 있다.
정서적 폭력과 경제적 어려움 속에 살아온 수혁에겐 신뢰성과 안정성이 매우 중요하다. 윤대가 그냥 쉽게 살라고 하는 데도 수혁에겐 그게 안 되는 이유다. 윤대가 자기만 똑바로 보라고 하는데도 수혁은 윤대만 바라보면서 윤대와 쉽게 관계를 시작하기 어렵다. 이렇게 사람을 쉽게 믿지 못하는 수혁의 깊은 내면엔 애정결핍과 외로움이 쓸쓸하게 찬 바람이 되어 불고 있다.
그런 수혁이 윤대를 다시 만났다. 수혁은 알고 싶다. 윤대의 마음이 어떤지 확신을 얻고 싶다. 누구라도 옆에 있어야만 하는 윤대에게 수혁 또한 ‘누구’ 중 한 명일까 봐 두렵다. 수혁은 윤대의 마음이 어떤지 헷갈리는 상태에선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다. 윤대가 기다리고 있는 집이 ‘돌아갈 곳’인지 확신할 수 없다. 그러면서도 수혁은 윤대가 좋다. 그래서 수혁은 윤대가 어렵다.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갖고 싶은 게 생겼지만 가져도 되는 건지 확신할 수 없어서 두렵고 무섭다. 그래서 수혁에겐 윤대가 가장 어렵다.
○ 윤대는 ‘집’을 구한다. 윤대는 자라면서 육체적, 정서적 폭력을 당해왔다. 그로 인해 윤대는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애정을 갈망한다. 윤대가 그 누구라도 옆에 두려는 이유다. 윤대는 애착 손상으로 인해 불안감이 증폭되면서 타인에게 과도하게 접근하여 경계를 침범하는 식의 행동 패턴을 보인다. 그러다가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모든 것을 상대의 탓으로 돌린다.
윤대의 겉모습은 강하고 안하무인처럼 보이지만 깊은 무의식 속엔 자기 존재에 대한 부적절감과 수치심이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강해 보이는 모습과 달리 작은 비판이나 거절에도 취약한 모습을 보인다. 윤대가 큰 소리로 화낼 때마다 엉엉 소리 내어 우는 것처럼 보여 안쓰럽다. 윤대 또한 수혁처럼 신뢰성과 안정성을 필요로 한다.
수혁을 6년 만에 다시 만난 윤대는 이제 수혁에게 안착하고 싶다. 윤대가 바라고 갈망하는 ‘집’은 바로 ‘수혁’이다. 윤대는 고등학교 때 술 취한 자신을 데리러 오고, 신발을 벗어주고, 상처 난 얼굴에 연고를 발라주는 등 자신을 돌봐줬던 수혁이 좋았다. 윤대는 이제 수혁의 사랑을 놓치고 싶지 않다. 결국 윤대는 참지 못하고 자신을 밀어내려는 수혁에게 키스한다.
◎ “힘들면 힘들다고 해. 괜찮은 척할 거면 제대로 하든가. 다 티나 네 얼굴에.”라고 말하는 윤대에게 수혁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안 괜찮아. 사실 너무 힘들어.”라는 말을 한다. 윤대는 이제 수혁이 계속 밀어내도 견뎌내고 싶다. 윤대는 계속 수혁에게로 가도 되냐고 묻는다. “부탁할 거 있어. 자는 척해, 이제부터.” 윤대는 수혁에게 진심이 담긴 키스를 한다. 윤대에게 계속 나가라고 했던 수혁은 집에 있는 윤대에게 전화를 건다. “저녁 약속 있어? 내가 사줄게. 나 6시에 퇴근하니까 끝나고 만나. 야! 듣고 있어?”
윤대가 기다리는 집이 이제 수혁에게 '돌아갈 곳'이 된 걸까? 수혁은 과연 윤대에게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회색기류의 타이틀 시퀸스가 보여준 마지막 포옹 장면이 힌트였으면 좋겠다. 수혁과 윤대가 서로에게 ‘돌아갈 곳’이자 ‘집’이 되고, 서로의 정서적 대피소가 되고, 낙원이 되었으면 좋겠다.(5점 만점에 4.3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