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emories(추억) ∥ 캄보디아 BL 드라마, LGBTQ+ ∥ 4부작 ∥ 2023.11.18.~12.09. ∥ 각본&감독 : 케오 속체트라(Keo Sokchetra) ∥ 출연배우(등장인물) : 리 킴차이, Ly Kimchhay(Phano) / 손 로타나, Sorn Rotana(Prince) / Phern Chanbopha(Cake) / 폼 추나, Phom Chounat(Toy) / 세리 모니네스, Serey Monineath(Yuri) / Chan Dareach(Nuche) / Lav Hongchiv(Same) / Kong Sambeulaseuna(Dy) 등)
‘The memories’는 파노가 게이로서 겪는 아픔을 이야기한다. 현실적인 결말은 BL보다는 퀴어적인 느낌이 더 강하다. 일찌감치 자신의 성 정체성을 깨달은 파노는 게이라는 이유만으로 괴롭힘을 당하곤 한다.
파노는 어느 날 남자친구 토이에게 차인다. 자신을 사랑하는 줄 알았건만 토이는 무려 2년이나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다. 파노는 여자친구와 만나고 있는 토이에게 다가가 따진다. 현장을 들켰음에도 토이는 오히려 너무나 당당하게 파노에게 동성애 혐오성 발언을 퍼붓는다.
“너는 내 장난감일 뿐이다. 나는 너를 진지하게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너에겐 아무 감정도 없다. 내 인생에서 꺼져라. 너 같은 게이랑 결혼할 사람은 없다.” 토이의 말이 칼날이 되어 파노의 심장에 파고든다.
연애 초반에 토이는 이렇지 않았다. 다정하게 업어주고 스킨십도 하는 등 엄청 자상하고 친절하게 굴었다. 영원히 떠나지 않을 거라는 약속도 했다. 그런데 그게 다 거짓이었단다. 파노는 믿을 수 없는 사실에 깊은 상처를 받는다.
파노를 가만히 지켜보던 바리스타 프린스가 파노에게 다가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걸며 따뜻한 우유 한잔을 건넨다. 프린스의 작은 관심과 친절이 파노에게 큰 위로가 된다. 그제야 파노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번진다.
파노는 프린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넨다. 프린스는 우울한 사람을 보면 도움을 주고 싶다며 오히려 자신이 고맙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감사를 표하고 싶으면 나가면서 웃어주면 된단다. 이 남자의 마음은 얼굴보다 더 잘생겼다.
프린스에게 반한 파노는 집에 오자마자 프린스의 페이스북 계정을 찾아낸다. 친구 케이크에게도 프린스를 보여주고 싶어서 프린스가 일하는 카페에서 만나기로 약속한다. 카페에 들어가 앉으려고 하는데 호모포빅(Homophobic)인 돔과 돔의 친구 두 명이 테이블을 독차지하곤 파노가 앉지 못하게 막는다. 게이 옆에는 앉고 싶지 않다는 게 이유다.
돔의 혐오성 발언은 토이가 퍼부었던 잔인한 말들을 떠오르게 한다.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 파노가 주먹을 휘두르려고 하자 프린스가 파노의 손목을 잡고 말린다. 프린스는 근엄한 얼굴로 돔을 바라보며 파노를 보호하듯 돔을 막아 선다. 그래도 돔이 멈추지 않고 혐오성 발언을 쏟아내자 프린스는 해고 당할 수도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 파노를 대신하여 돔에게 주먹을 날린다.
어느 날 돔의 무리가 친구들과 함께 있는 파노를 발견하곤 혐오성 발언을 쏟아내며 싸움을 걸어온다. 마침 이 광경을 목격한 프린스가 다가와 강경한 모습으로 돔의 앞을 막아 선다. 돔이 “난 게이가 싫다. 게이가 짜증난다.”라며 계속해서 혐오성 발언을 뱉어내자 이번에도 프린스는 파노 대신 돔에게 주먹을 날린다. 돔이 두고 보자는 말을 남기고 도망간다.
파노는 자신에게 너무 잘해주는 프린스를 위해 홀로 깜짝 생일 파티를 준비한다. 케이크의 불을 끈 후 프린스의 휴대폰으로 셀카를 찍는다. 그러다가 둘이 눈이 마주친다. 잠시 적막이 흐르면서 둘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감돈다. 프린스는 고개를 돌려 파노의 눈빛을 피한 채 셀카를 몇 장 더 찍는다.
프린스는 파노를 집까지 데려다주고 돌아가는 길에 몇 번이나 뒤를 돌아다 본다. 파노도 그냥 집에 들어가기가 싫어 계속해서 뒤를 돌아다 본다. 안타깝게도 프린스는 외진 길에서 돔의 무리를 만난다. 프린스는 쇠파이프로 얻어맞으면서도 돔의 무리를 모두 때려눕힌다. 마침 집에 들어 가려다가 되돌아 나온 파노가 프린스를 발견한다.
프린스는 멍한 눈으로 놀란 채 서 있는 파노와 쓰러진 돔의 무리를 번갈아 바라본다. 파노가 부둥켜 안아도 프린스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넋이 빠진 채 가만히 있는다. 상처투성이가 된 프린스를 그대로 보낼 수 없어 파노는 집으로 프린스를 데리고 온다. 파노의 걱정이 끊임없이 이어지자 프린스는 그제야 방긋 웃으며 “잘 자, 좋은 꿈 꿔.”라며 파노를 안심 시킨다.
그랬는데 다음날 프린스가 사라진다. 카페에 가봐도 보이지 않는다. 프린스의 흔적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걸까? 왜 프린스는 카페까지 그만두고 아무런 말도 없이 사라진 것일까? 다행히 파노는 카페 직원을 통해 프린스가 품뜨랑 시엠립주에 산다는 걸 알게 된다.
케이크는 파노에게 프린스가 너를 좋아하는 것 같다며 프린스를 직접 만나 갑자기 사라진 이유를 들어보라고 부추긴다. 나 또한 케이크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분명히 프린스의 눈빛과 둘 사이에 흐르는 묘한 긴장감은 ‘그냥 친구’의 느낌은 아니었다.
케이크의 격려에 힘입어 파노는 앙코르와트 시엠립으로 향한다. 하지만 파노가 아는 것이라곤 시엠립에 산다는 것뿐이다. 파노는 며칠 동안 시엠립을 헤매며 프린스를 찾아다닌다. 그리고 드디어 어느 카페에서 파노는 프린스와 마주한다.
그랬던 거다. 프린스는 이성애자다. 파노를 소중하게 여긴다고 해서 갑자기 이성애자가 동성애자가 되어 파노가 원하는 관계가 되어줄 순 없다. 노력한다고 해서 이성애자가 동성애자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일반적인 BL드라마처럼 “나는 남자를 좋아하지 않지만 너만은 좋아해.” 같은 대사를 해줄 순 없는 것이다.
프린스는 언제까지고 파노의 옆에서 파노를 지켜줄 수 없다는 걸 쇠파이프를 든 돔과 싸우던 날 깨달았다. 파노를 깊이 연민했지만 그건 사랑이 아니었다. 생일 파티를 하면서 프린스는 파노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걸 알게 됐다. 계속 파노가 착각하도록 내버려 둘 순 없었다. 그렇기에 프린스가 파노에게 마지막으로 해줄 수 있는 최대의 배려는 아무런 말도 없이 프놈펜을 떠나 파노를 다시는 만나지 않는 거였다.
이성애든 동성애든 성적 취향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렇기에 프린스의 선택도 존중 받을 필요가 있다. 긴장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프린스에게 파노는 분노하지 않는다. 파노는 프린스의 선택을 수용하고 작별을 고한 채 돌아선다. 그리곤 친구들에게 돌아와 그제야 실패했다고 말하며 울음을 터뜨린다.
여기서 난 사실 약간 화가 났다. 물론 프린스가 현실적인 선택을 했다고 해서 잘못했다고 말할 순 없다. 하지만 일반적인 BL 드라마처럼 프린스가 파노의 왕자님이 돼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봐서인지 프린스의 선택이 너무 현실적이어서 마치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씁쓸했다. 게다가 이름까지 '프린스'이지 않은가! 그러니 파노의 상실감은 얼마나 더 컸을까? 생각할수록 가슴이 너무 아프다.
그렇기에 파노는 프린스의 선택을 비난하지 않을 수 있었다. 프린스의 선택은 바람둥이 토이와는 완전히 달랐다. 파노가 실패했다며 울음을 터뜨렸지만 그건 프린스와의 사랑이 실패했다는 것이지 앞으로의 사랑 또한 실패할 거란 뜻은 아니다.
비록 사랑은 아니었지만 파노는 자신에게 헌신적이었던 프린스와의 추억(The Memories)을 간직한 채 여전히 사랑을 꿈꾸며 살 것이고,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호모포비아가 만연한 세상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수많은 파노들을 응원한다.(5점 만점에 4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