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번째 감각(The Eighth Sense) ∥ 한국BL드라마, 서핑, 학원물, 로맨스, LGBTQ+ ∥ 10부작 ∥ 2023.03.29.~04.26. ∥ 18+등급 ∥ 각본&감독 : 백인우 ∥ 베르너 두 플레시스(Werner du Plessis) ∥ 출연배우(등장인물) : 임지섭(재원) / 오준택(지현) / 박해인(은지) / 이미라(윤원) / 박해인(은지) / 장영준(태형) / 서지안(애리) / 채수아(빛나) / 정서인(삼겹살집 사장) / 방진원(준표) / 재니스, Janice(상담사) / 김희영(명재) / 장용희(장호) 등)
‘임지섭&오준택’의 케미스트리는 기대 이상이다. 둘이 한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압도하는 성적 긴장감을 느낄 수 있다. 서로에게 느끼는 호기심과 성적 이끌림이 너무도 생생하게 와닿는다.
시골 작은 마을에서 자란 지현은 서울에 있는 대학에 합격하여 처음으로 시골을 벗어난다. 다행히 소꿉친구인 준표와 함께 기숙사를 쓰게 된다. 극도로 내성적이고 수줍음 많은 지현은 준표 외에는 이야기할 사람이 없지만 외향적인 준표는 항상 밖으로 나돈다.
삼겹살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지현은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하기 위해 일을 핑계로 오리엔테이션에 가지 않는다. 어느 날 삼겹살집에서 재원과 태형이 술에 취해 말싸움을 벌인다. 폭력이 일어나기 직전 지현이 개입하여 말린다. 재원과 지현의 눈이 마주치는 순간 둘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른다.
재원은 알 수 없는 이끌림으로 지현에게 말을 건다. 짧은 대화로 지현이 학교 후배임을 알게 된다. 이제 막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한 재원은 자신이 학교 선배임을 밝히고 지현에게 친구를 하자고 제안한다. 지현 또한 알 수 없는 이끌림으로 자신감 넘치고 매력적인 재원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수업을 들으러 가는 길에 지현은 서핑 동아리 홍보 포스터 모델이 재원임을 알아본다. 지현은 동아리 가입을 망설이지만 삼겹살집 사장의 격려와 재원을 향한 이끌림으로 동아리에 가입한다. 동아리 회장 윤원은 지현을 반갑게 맞이한다. 지현은 동아리방에서 재원과 함께 홍보 포스터를 찍은 은지를 보게된다. 은지는 재원과 헤어졌지만 재원과 재결합하고 싶어 한다.
서핑 동아리는 바다로 MT를 떠난다. 여자 신입생 두 명의 멘토링이 된 재원은 윤원에게 요청해 신입생 멘토링 대상을 지현으로 바꾼다. 서핑복 입는 법을 가르쳐 주는 그 순간부터 서핑을 가르쳐 주고 샤워를 하는 그 순간까지 재원과 지현은 서로를 강하게 의식한다. 서로에게 이끌리는 두 사람에게서 감각적인 전율이 느껴진다.
서핑은 재원과 지현이 서로에게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드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바다는 아름답지만 위험과 호기심으로 가득 채워진 무한한 공간이다. 파도를 타는 것은 열정적이고 짜릿하면서도 두렵다. 특히 초보자는 보드에서 떨어지고 파도에 끌려가고 바닷물을 마셔가며 일어나고 넘어지기를 반복해야 한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사랑 또한 일어나고 넘어지기를 반복한다. 바다처럼 사랑이 주는 모호함은 내면의 두려움을 불러일으키지만 너무 강력한 유혹이어서 피할 수 없다. 인간의 마음처럼 바다 또한 완전히 이해할 수 없기에 신비롭다. 지현은 바다를 타는 법을 재원에게 배워보지만 아무리 익숙해진다고 해도 사랑만큼이나 예측 불가능한 파도를 정복할 순 없다.
서핑을 하는 동안 성적 긴장감이 재원과 지현을 감싼다. 은지는 직감적으로 재원과 함께 있는 지현을 보며 적대감을 느낀다. 결국 술에 취한 재원과 지현은 자제력을 잃고 욕망에 굴복한 채 키스한다.
하지만 키스 이후 재원은 지현의 눈을 피하고, 버스 좌석을 바꾸는 등 의도적으로 지현을 피한다. 지현은 그런 재원을 보며 상처받는다. 겉으로 보기엔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인싸이지만 재원의 내면은 극도로 취약하다.
어린 시절 동생이 눈앞에서 죽는 걸 본 후 재원의 트라우마가 시작됐다. 밝아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재원의 내면은 슬픔과 우울함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런 재원이 남자인 지현과 키스했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동성애 혐오가 만연하다. 재원은 자신을 압도해버리는 성적 이끌림과 두려움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 한다.
그러면서도 재원은 지현에게 다가가고 싶은 열망을 거부하지 못한다. 재원은 결국 지현과 함께하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재원은 두 사람의 관계를 발전시키는 데는 주저하고 망설인다. 지현은 재원의 밝고 활발한 겉모습 안에 감춰져 있는 어두운 감정을 발견한다. 지현은 재원의 마음을 이해하고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그런 지현에게서 재원은 위안과 안정감을 느낀다.
이제까지 재원은 동생을 구하지 못한 죄책감과 자책감으로 자신의 행복보다 타인을 기쁘게 하는 것에 몰두하며 살아왔다. 사진을 포기하고 아버지의 회사를 물려받기로 선택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이후 재원은 지현과 둘이 서핑을 하러 갔다가 동생의 죽음을 되살리는 사고를 경험한다. 지현이 물에 빠져 의식을 잃고 병원에 실려 간 것이다. 동생도 자신과 함께 있을 때 사고를 당했다. 재원은 부정적인 생각에 매몰되어 겁에 질린 채 극심한 슬럼프에 빠져버린다.
동생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또 잃게 될까 봐 두려운 재원은 지현을 밀어내기 시작한다. 또다시 그런 경험을 하게 된다면 재원은 결코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재원은 의도적으로 지현과의 연결을 끊고 자신을 보호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죽을 뻔한 경험을 한 지현은 이전과 달라졌다. 죽는 것보다 더 무서운 건 없다. 과거에 지현을 괴롭히던 많은 것들은 이제 지현의 눈에 하찮아 보인다. 죽을 고비를 넘긴 후 지현의 관점이 바뀐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질투에 눈이 먼 은지가 자신에게 함부로 대하는 걸 허용하지 않는다. 또한 재원이 밀어내도 결코 사랑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지현의 무서운 도약이 짜릿하게 다가온다.
트라우마의 원인을 알게 된 지현은 재원에게 카메라를 선물한다. 지현은 재원의 꿈을 상기시키고 재원을 위로하며 과거를 재정립할 수 있도록 격려한다. 지현으로 인해 재원은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었던 것이 무엇인지 기억해 낸다.
지현은 재원의 옆에서 재원이 혼자가 아님을 상기시킨다. 지현의 위로와 사랑은 재원의 치유제가 된다. 재원이 슬럼프에 빠지고 감정적으로 길을 잃을 때마다 지현은 재원을 찾아내서 재원의 손을 잡아줄 것이다. 이러한 믿음이 재원을 안심시킨다. 지현에게 재원은 두려움에 맞서고 새로운 것을 시도할 수 있도록 자신감을 주는 사람이다. 재원에게 지현은 진정한 위로와 보살핌을 주는 사람이다. 재원과 지현은 함께 있음으로써 서로를 성장시키는 관계가 된다.
드라마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감각적 테크닉 안에 인간적인 이야기를 담아낸다. 삶은 우리에게 때때로 절망감을 안겨주지만 동시에 그것을 극복할 이유와 기회를 제공해 준다. 우리는 상황이 아무리 고통스럽고 암울하게 느껴지더라도 오늘을 살며 내일로 나아갈 수 있다.
극본, 연출, 촬영, 편집은 섬세하고 정교하고 세련되고 생생하다. 탈의실 장면, 샤워실 장면, 서핑하는 장면, 해안선을 걷는 장면, 서로 마주 보는 장면, 작은 손길 등 의도적인 장면들로 인해 드라마를 시청하는 내내 감각적인 자극이 남아 있게 된다.
‘임지섭&오준택’의 연기도 우아하고 섬세하다. 서로를 의식하고 걷잡을 수 없이 끌리고 있다는 걸 너무 자연스럽게 연기해서 리얼하게 느껴진다. 특히 임지섭의 흔들리는 눈빛, 긴장한 표정 등이 전체적인 분위기를 관능적으로 만든다. 캐릭터에 생명을 불어넣은 두 배우의 훌륭한 연기에 찬사를 보낸다.(5점 만점에 5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