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 애즈 포크(Queer As Folk)’는 피츠버그에 거주하는 6명의 게이 브라이언, 저스틴, 마이클, 벤, 테드, 에밋과 2명의 레즈비언 린지, 멜라니의 삶을 그려낸 매혹적인 드라마다. 노골적인 NC씬에만 초점을 맞추면 게이들의 난잡한 성생활을 그린 드라마라고 오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시즌 5까지 보고 나면 '퀴어 애즈 포크'가 성소수자들의 고뇌, 딜레마, 인생에 대해 얼마나 진지하고 깊게 고찰하고 있는지를 알게 된다. 시즌 1과 시즌 2 정도만 보고 이 드라마를 판단하지 말자. 이 드라마의 진정한 가치는 시즌 5까지 봐야 드러난다.
‘퀴어 애즈 포크’가 제작된 년도는 2000년이다. 무려 24년 전이다. 당시 드라마 제작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본다면 자칫 획기적인 이 드라마를 과소평가하기 쉽다. 사실 난 이 드라마를 보면서 몇 번이나 놀라고 감탄했다. 특히 이 드라마에 출연하여 마치 캐릭터 그 자체처럼 연기한 배우들에겐 몇 번이고 경의를 표하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그 당시에 이토록 솔직하게 게이와 레즈비언을 다룬 TV 드라마가 제작됐다는 것이 너무 놀랍다. ‘퀴어 애즈 포크’는 표면적으론 술, 마약, 성생활이 주를 이루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상의 깊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 세심한 대본과 훌륭한 연출로 성소수자의 사랑, 성정체성 혼란, 우정, 가족 관계, 건강, 동성애 혐오, 성소수자 증오 범죄, 마음의 상처, 권리를 위한 투쟁 등을 다룬다.
쇼타임 채널에선 '일반화의 오류'를 줄이기 위해 드라마 방송 전에 “퀴어 애즈 포크는 게이 친구들의 삶과 열정을 축하하는 것이다. 전체 게이 커뮤니티를 반영하려고 하지 않는다.”라는 문구를 보여준다. 자칫하면 주요 인물, 특히 브라이언을 보며 모든 게이들의 성생활이 문란하다고 오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이 모든 게이와 모든 레즈비언을 대표한다는 터무니없는 생각은 하지 않으리라 믿는다.
● 브라이언 키니 & 저스틴 테일러(메인 커플)
◎ 브라이언 키니
브라이언은 나에게 연민 덩어리다. 그만큼 브라이언을 떠올리면 가슴이 저릿하다. 29살의 브라이언은 마성의 게이다. 잘생긴 얼굴, 188cm의 키, 다부진 몸매로 게이들은 브라이언과 눈만 마주쳐도 그의 성적 매력에 빠져 잠자리를 하고 싶어한다. 광고 회사의 중역으로 돈도 잘 번다. 브라이언은 매일 밤 원나잇을 즐기며 살아간다. 한번 만난 상대와는 다시 만나지 않는 것이 그의 룰이다.
브라이언이 믿지 않는 건 사랑, 결혼, 모노가미(Mono+Gamy, 일대일 동거 관계)다. 왜 브라이언은 사랑과 헌신을 믿지 않게 된 걸까? 브라이언의 트라우마는 상처로 얼룩진 가정 환경에서 비롯됐다. 어릴 때부터 갖게 된 아버지, 엄마, 누나에 대한 분노로 인해 브라이언의 자존감은 바닥으로 떨어진다.
그의 아버진 가족을 사랑하지 않았다. 죽을 때까지 방탕했던 아버진 알콜중독, 도박에 미쳐 있었다. 브라이언을 임신한 상태일 땐 브라이언을 낙태시키려고 하기도 했다. 만취한 상태로 브라이언의 누나와 브라이언을 폭행하려다가 엄마가 대신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브라이언이 돈을 벌기 시작하자 정기적으로 생활비를 받아 챙겨서는 술과 도박에 탕진했다. 브라이언이 게이임을 밝히자 너같은 놈은 지옥에 떨어질 거라는 험한 말을 거침없이 뱉어내기도 했다. 그러다 암에 걸린 아버진 끝내 브라이언에게 트라우마만 유산으로 남긴 채 죽고 말았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자 호모포비아인 엄마는 오로지 신앙심 하나로 폭력적인 결혼생활을 버티며 사느라 아이들에게 신경 쓰지 못했다. 당연히 브라이언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브라이언이 게이임을 밝히자 지옥에 떨어질 거라며 거침없이 아들을 향한 적대감과 혐오감을 드러냈다.
누나 또한 마찬가지다. 브라이언이 게이라는 걸 오래 전부터 알고 있던 누나는 대놓고 브라이언에게 동성애 혐오를 드러냈다. 오죽하면 조카들까지 브라이언을 향해 ‘호모 새끼’라며 비아냥거릴 정도다. 게다가 조카 존은 브라이언의 돈을 훔치다가 걸리자 삼촌이 자신을 성추행했다고 신고까지 한다. 다행히 저스틴 덕분에 브라이언의 무고죄 문제는 해결된다.
엄마 뱃속에서부터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해온 브라이언은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잃어버린 채 가족을 향한 분노를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 브라이언이 집착하는 건 오로지 젊음과 아름다움과 성생활뿐이다. 자기애가 높아 보이지만 이러한 모습은 오히려 브라이언의 자존감이 얼마나 낮은지를 반영해줄 뿐이다. 특히 원나잇은 브라이언에게 존재의 우월감과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그래서 그는 밤마다 사냥감을 찾아 바빌론으로 향하고 술과 약과 원나잇을 한다.
그런 그가 저스틴을 만난다. 저스틴은 아무리 밀어내도 계속 브라이언에게 돌아온다. 그러다 브라이언과 동거까지 하는데 성공한다. 저스틴과 저스틴의 가족이 상상 초월의 민폐를 끼치지만 브라이언은 신기할 정도로 그걸 다 참아낸다. 처음엔 그저 저스틴을 'Friends With Benefits'으로 여기지만 자기도 모르는 사이 저스틴을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브라이언은 자신의 마음을 인정하지 않는다. 저스틴이 다른 남자와 동거한다고 잠시 떠났을 때는 저스틴과 비슷한 남창을 구해 관계를 맺을 정도로 저스틴을 그리워하며 힘들어하기도 하지만 자신이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자체가 브라이언에겐 너무 힘든 일이다.
자기중심적이고, 독설과 직설적인 말투로 상처도 주고, 이성적이고 차갑게 보이지만 사실 속마음은 굉장히 여리고 따뜻하다. 제대로 된 롤모델을 만나지 못해 표현하는 법을 알지 못한 채 성장했을 뿐이다. 브라이언은 자신과 관계된 사람들을 위해선 자신이 어떻게 되든 그들 모르게 뒤에서 자신을 희생하며 도와줄 정도로 츤데레다. 모든 재산을 다 날려도 개의치 않을 정도다. 그와 싸우고 절교했던 주변인들까지 그에게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시즌 4에선 자신만의 광고 회사를 설립하고 짧은 시간 안에 안정적인 위치에 올려놓는다. 마성의 게이일뿐만 아니라 일에서도 프로페셔널한 능력자다. 사실 매일 원나잇을 하면서도 일까지 완벽하게 해내는 브라이언은 게이들이 꿈꾸는 판타지적 인물이다. 고환암에 걸리면서 정신적으로 엄청난 위기를 겪지만 리버팅 라이딩 자전거 일주 코스를 완주하면서 정신적, 신체적 슬럼프를 극복해낸다.
결혼을 극혐하던 브라이언은 폭탄 사고로 저스틴을 잃을 뻔한 사건을 겪은 후 저스틴을 잃는 것이 너무 두렵고 무서운 나머지 저스틴에게 청혼하게 된다. 하지만 저스틴의 성공을 위해 결혼을 취소하고 저스틴을 뉴욕으로 보내기로 결정한다. 저스틴이 떠나기 직전 둘의 마지막 NC씬은 브라이언이 저스틴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보여주는 명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저스틴을 떠나보내야 하는 브라이언의 마음이 어떨는지 생각하니 코끝이 시큰해졌다.
‘브라이언이 저스틴을 만나서 정말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시즌 5까지 보고 난 후 했더랬다. 브라이언의 문란한 성생활에 상처받으면서도 저스틴은 브라이언을 향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다. 사랑을 믿지 않았던 브라이언이 사랑을 믿게 된 것은 저스틴의 헌신적인 사랑 덕분이다. 비록 시즌 5에서 저스틴이 뉴욕으로 떠나게 됐지만 저스틴은 반드시 브라이언의 곁으로 돌아올 것이라 믿는다.
◎ 저스틴 테일러
17살의 저스틴은 자신이 게이라는 걸 깨닫고는 리버틴 거리의 유흥가를 떠돌다가 브라이언의 눈에 띈다. 브라이언과 첫경험을 한 후 브라이언 앞에 다시 나타나자 브라이언은 저스틴을 밀어내며 단호하게 말한다.
“너하곤 끝났어. 그냥 재미 삼아 만났을 뿐이야. 넌 날 원했고 나도 널 원했어. 그게 전부야. 난 사랑을 믿지 않아. 단순히 원나잇만 할 뿐이야. 그건 정직하고 효과적인 행위지. 최고의 즐거움과 최소의 가책만이 남으니까. 사랑에 빠졌다는 건 이성애자들이 잠자리를 하고 싶은 걸 둘러서 말하는 거야. 그런 거짓말을 바탕으로 시작하니까 상처를 받게 되는 거라고!”
하지만 저스틴은 어떤 말을 들어도 물러서지 않는다. 부모에게 커밍아웃한 후 부모와 갈등하던 끝에 갈 곳이 없어진 저스틴은 브라이언의 집으로 쳐들어간다. 저스틴과 저스틴의 가족이 엄청난 민폐를 끼치지만 브라이언은 저스틴을 쫓아내지 못한다.
저스틴은 'Friends With Benefits'으로서 브라이언의 집에 머물게 된다. 브라이언은 저스틴을 자신이 추구하는 방식의 번듯한(?) 게이로 만들어준다. 저스틴은 마치 리틀 브라이언처럼 브라이언에게 배운 대로 브라이언과 함께 원나잇을 즐기는 생활을 하게 된다.
브라이언의 집에서 학교를 다니는 동안 저스틴은 게이라는 이유로 학교 폭력에 시달린다. 심지어 고등학교 졸업 축제에선 동급생인 크리스에게 야구방망이로 뒤통수를 가격당해 죽을 뻔했다가 살아난다. 브라이언이 저스틴을 병원으로 옮겨 살려내지만 자신이 보는 앞에서 그런 일을 겪었다는 이유로 브라이언은 심한 죄책감을 갖게 된다.
수전증이 후유증으로 남아 미술을 할 수 없는 위기에 처하지만 자신이 하고자 마음먹은 일은 끝내 해내고야 마는 저스틴은 재활치료를 꾸준히 하여 오른손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저스틴은 브라이언에게 선물 받은 그래픽 태블릿으로 그림을 그릴 수도 있게 된다. 다트머스 대학교에 원서를 넣을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수재지만 미술을 하기 위해 피츠버그 미대에 진학했던 저스틴은 복학하여 다시 학교에 다닐 수도 있게 된다.
마이클과 함께 브라이언을 모델로 한 게이 슈퍼 히어로 만화 ‘레이지’를 창작하여 엄청난 성공을 거둔다. 시즌5에선 뉴욕 신인 작가 전시회에 자신의 작품을 선보일 기회를 얻기도 한다. 하지만 브라이언에게 청혼받은 저스틴은 뉴욕에 가는 대신 브라이언을 선택한다. 그걸 알게 된 브라이언은 결혼을 취소하고 저스틴이 뉴욕에 갈 수 있도록 설득한다. 저스틴은 다시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뉴욕으로 떠난다.
시즌 5까지 보는 동안 저스틴에게 진심으로 감동했다. 저스틴은 진정으로 브라이언의 상처와 트라우마를 이해하고 공감했다. 나이는 브라이언보다 훨씬 어렸지만 오히려 저스틴이 더 성숙해 보일 정도로 브라이언을 가슴 깊이 품어 안았다. 그러니 브라이언이 어떻게 저스틴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사실 ‘퀴어 애즈 포크(Queer As Folk)’는 29살의 브라이언과 미성년자인 17살의 저스틴을 주인공으로 다뤘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았다. 그들의 사랑 이야기가 중심이었기 때문에 더욱 비난받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마 요즘 방송했다면 방송 금지를 당하지 않았을까?
비록 브라이언과 저스틴은 원나잇으로 시작했지만 시즌을 거듭할수록 둘이 서로를 얼마나 사랑하게 되었는지는 부인할 수 없다. 더불어 게일 헤롤드와 랜디 해리슨의 케미스트리는 역대급이라 할 수 있다. 시즌 5까지 무려 5년 동안 방송됐지만 게일 & 랜디를 다시 볼 수 없다는 것이 너무 아쉬울 정도로 여전히 방송되지 않을 다음 시즌이 그립다. ‘퀴어 애즈 포크(Queer As Folk)’ 리뷰 2-2는 벤 & 마이클 커플과 그 외 주요 인물들을 다룬다.(5점 만점에 5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