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연인들(Fellow Travelers) ∥ 미국퀴어드라마, BL, 정치, 스릴러, LGBTQ+ ∥ 8부작 ∥ 쇼타임 Paramount+ 2023.10.28.~12.02. ∥ 19+등급 ∥ 원작 : 토마스 말론(Thomas Mallon)의 소설 ‘Fellow Traveller’ ∥ 각본 : 론 니스와너 / 브랜든 K. 하인스 / 안야 레타 / 디 존슨 / 잭 솔로몬 / 케이티 로즈 로저스 / 로비 로저스 ∥ 연출 : 다니엘 미나한 / 우타 브리제비츠 / 데스티니 에카라가 / 제임스 켄트 ∥ 출연배우(등장인물) : 맷 보머, Matt Bomer(‘호크’ 호킨스 풀러) / 조나단 베일리, Jonathan Bailey(‘스키피’ 팀 로플린) / 젤라니 알라딘, Jelani Alladin(마커스 후크) / 노아 J. 리켓츠, Noah J. Ricketts(프랭키 하인스) / 에린 노이퍼, Erin Neufer(메리 존슨) / 앨리슨 윌리엄슨, Allison Williams(루시 스미스) / Linus Roache(웨슬리 스미스) / Mike Taylor(레너드 스미스) / Chris Bauer(조 매카시) / Will Brill(로이 콘) / Matt Visser(데이비드 샤인) / Christine Horne(진 커) 등)
‘길 위의 연인들(FellowTravelers)’은 1950년대와 1980년대 타임라인을 능숙하게 전환하면서 60년대와 70년대로 진출한다. 호크와 팀은 1952년 처음 만나 사랑을 시작하고, 1953년 뜨겁게 사랑하고, 1968년 이별하고, 1978년 재회와 이별을 했다가 1986년 다시 재회하는 등 서로를 놓지 못하고 끊임없이 애틋한 사랑을 이어간다. 이와 함께 동성애자가 차별과 박해를 당했던 비극적 역사를 조명한다.
워싱턴 DC 1952년 공화당 정치인 아이젠하워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조셉 매카시가 상원의원으로 당선된다. 당선 파티에서 호크와 팀은 처음으로 만난다. 호크가 술을 권하자 팀은 우유를 마시겠다고 한다. 신선한 대답을 들은 호크는 팀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팀의 시선도 자꾸만 호크에게로 향한다.
호크는 공원 벤치에 앉아 책을 보며 빵과 우유를 먹고 있는 팀을 다시 만난다. 호크는 선한 일을 위해 정치에 뛰어들려는 팀의 열정과 순진함이 귀여워 웃는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팀은 소비에트와 핵폭탄이 실제 위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공산당을 저격하는 매카시를 매우 존경하고 있다. 이런 팀에게 호크는 매카시 사무실에서 하급 직원으로 일할 수 있도록 힘을 써준다. 호크의 목적은 그가 모시는 스미스 상원위원을 위해 매카시의 정보를 알려 줄 스파이를 두는 것이다.
팀은 호크의 매력에 굴복하고 비록 매카시를 존경하면서도 그의 정보를 호크에게 알려주기 시작한다. “넌 내거야. 네가 누구 거라고?” “당신 거요.” “당신을 알고 싶어요.” 팀이 말하자 호크는 팀의 이마에 키스하며 “이제 알았지?”라고 답한다. 호크에게 섹스는 단지 육체적 쾌락을 위한 것이지만 팀에게 섹스는 사랑의 시작이다. 이때부터 호크는 팀을 스키피라고 부르기 시작한다.
이후 호크와 팀의 만남은 계속된다. 그러면서 이들의 변화는 매우 다른 방식으로 일어난다. 팀은 자신의 종교적 믿음 때문에 고통을 겪기 시작하고 호크는 애착과 관련한 문제를 보인다. 호크와 팀의 케미스트리는 만날 때마다 화면을 뜨겁게 달군다. 그들의 NC신은 열정적이고 화끈하며 친밀하고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팀은 사랑을 원하지만 호크는 사랑을 부정한다. 팀은 섹스와 감정이 분리되지 않지만 호크는 섹스와 감정을 분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팀은 성당에 가서 기도하며 운다. 신부가 다가와 “아무리 죄가 무겁더라도 하느님이 용서하시고 정결케 한다.”라고 말해주지만 그것이 바로 팀이 눈물을 흘리는 이유라는 걸 신부는 알지 못한다. 고해엔 완전한 참회가 필요하지만 팀은 그럴 수 없다. 팀은 음욕을 저질렀지만 그 대상이 남자이고, 죄를 지으면서 정결해짐을 느낀다. 평생에 없던 만족을 느낀다. 그렇기에 반성할 수가 없다. 이것이 팀을 고통스럽게 만든다.
매카시의 발표는 국가 전체를 뒤흔든다. 매카시는 공산주의에 이어 성소수자를 향한 마녀 사냥을 시작한다. 매카시즘은 라벤더 공포를 불러 일으킨다. 변태 성욕자, 이상 성욕자라고 낙인 찍힌 게이와 레즈비언은 국가 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되어 수천 명이 정부에서 추방된다. M유닛이 동성애자라고 해고한 연방 직원은 공산주의 성향자라고 해고한 직원보다 2배가 넘을 정도다. 동성애는 사회적 수치, 가족의 불명예, 실업을 가져온다. 동성애를 치료해야 할 정신병으로 간주하여 혐오 치료와 간헐적 전기 경련 치료 등을 시행하기도 한다.
호크와 팀의 서로를 향한 이끌림은 두 사람의 삶을 오가는 위험, 도전 및 기타 관계에도 불구하고 훨씬 더 친밀하고 지속적인 관계가 되는 동시에 정열적인 성적 연결로 변한다. 여기서 눈에 띄는 것은 많은 게이 남성들이 비극적일 만큼 자기 혐오와 죄책감을 심하게 느꼈다는 점이다. 그들은 커밍아웃을 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고 진정한 자아가 되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렇기에 당시엔 동성애자임을 들키지 않기 위해 여자와 결혼하는 게 선택이 아닌 필수로 여겨졌다.
단속이 점점 심해지자 호크는 팀의 안전을 위해 팀에게 레즈비언인 존슨과 자주 만나라고 권한다. 일종의 연막이다. 호크는 스미스의 딸인 루시와 자주 동행한다. 비밀리에 동성애자 모임을 갖고 있는 존슨은 팀을 집으로 초대한다. 퀴어들 속에서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 있는 동안 팀은 편안함과 행복감을 느낀다.
사랑을 부정하면서도 호크는 팀에게 그의 이니셜이 새겨진 커프스 단추를 선물하며 팀에 대한 애정을 보여준다. 비록 공식적으로 끼고 다닐 수 있는 반지를 줄 순 없지만 호크에게 커프스 단추는 팀이 자신의 것임을 세상에 알리는 방법이다. 팀은 이 선물을 받아들임으로써 자신이 호크의 것임을 인정한다.
호크는 여직원의 신고로 M유닛에서 심문을 당하게 된다. 호크는 거짓말 탐지기에 걸리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맥박과 호흡에 집중하는 방법을 연습한다. 다행히 거짓말 탐지기를 무사히 통과하지만 이로 인해 호크는 자기 자신을 더 부정하는 방법을 배운다. 그는 마커스에게 거짓말 탐지기를 통과한 이유에 대해 ‘죄책감이 없어서’라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호크는 거짓말에 대해 팀에게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스키피, 누구나 거짓말을 해. 우린 잠자리 상대에 대해서 하는 것뿐이야. 그래서 상처받은 거 알아. 넌 착하고 좋은 사람이니까. 하지만 거짓말은 쉬워지고 결국엔 별로 아프지 않게 돼. 어쩔 수 없으니까.” 이런 호크에게 팀은 확실하게 정정해준다. “잠자리 상대가 아니죠. 거짓말하는 건 같이 자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이에요.”
스미스의 아들인 레너드가 남성과 성행위를 하다가 적발되자 스미스는 호크를 시켜 레너드를 정신병원에 보낸다. 얼마 후 스미스는 사임하지 않으면 레너드가 동성애자임을 까발리겠다는 협박편지를 받는다. 스미스는 아들의 미래를 위해 시키는 대로 사임하고 권총 자살을 하고 만다. 이런 경험들은 호크로 하여금 점점 더 자신의 성정체성을 부정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성애자의 삶을 택한 호크는 스미스의 딸 루시와 결혼하여 가정을 꾸린다. 하지만 팀은 호크와 달리 자기 자신의 의미를 찾는 삶을 택한다. 1968년 신학대 학생이 된 팀은 고해 성사에서 불순한 생각을 멈출 수가 없다고 하면서도 “사랑이 어떻게 죄가 되죠?”라고 묻는다. 팀은 신앙에서부터 정치 활동까지 모든 것에서 의미를 찾아 나선다.
1986년 호크는 그토록 원하던 밀라노 부영사로 발령받는다. 부임 축하 환송식에 방문한 마커스는 팀이 호크와의 관계를 끊고 싶어한다며 팀이 호크에게 받았던 기념품을 돌려준다. 삶이 얼마 남지 않은 팀이 주변 정리를 하고 있다는 말을 들은 호크는 팀을 만나기 위해 샌프란시스코로 간다.
에이즈에 걸린 팀은 마커스와 프랭키 등 수많은 사람들의 보살핌을 받고 있다. 비록 팀은 카포시 육종과 폐렴 등의 합병증으로 몇 달밖에 살지 못하지만 퀴어 동료들과 이들의 행동주의는 팀에게 필요한 활력을 준다.
반면에 이성애자의 삶을 택한 호크는 더욱 고독해졌다. 그의 아내 루시는 오래전부터 팀과 호크의 관계를 알고 있었다. 루시는 임신한 딸이 아빠에 대해 묻자 이렇게 말한다. “너희 아빠에게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지만 우리가 함께 꾸린 삶을 사랑했단다. 그래서 내 세대 여자들이 배운 대로 했지. 보기 싫은 건 눈을 감아 버렸어.” 호크와 루시는 부부로 살았지만 껍데기만 안고 살았다.
캘리포니아 주민 3천명이 HIV로 죽었지만 주지사가 보호 법안을 계속 기각한다. 팀의 부탁으로 에이즈 법안을 통과시키고 에이즈 기금을 촉구하기 위해 ‘듀크메지언 주지사 모금 행사’에 팀을 데려간 호크는 팀과 헤어지기전 이렇게 말한다. “생각해봤는데 네 삶에 내가 들어간 것만으로도 상처가 됐을 거야.” 팀은 이번에도 호크의 말을 정정해준다. “호크, 안 그래도 돼요. 난 신이 사랑해주길 기다리며 거의 평생을 보냈는데 중요한 건 그게 아니란 걸 깨달았죠. 내가 사랑하면 된 거예요. 당신도 마찬가지예요. 평생 당신을 사랑했어요. 오직 당신만을 사랑했죠. 온 마음을 바쳐 당신을 사랑했고, 그런 사랑을 하는 사람은 드문데 난 했죠. 후회 안 해요. (키스) 이것 봐요. 공개적인 곳에서 이래도 세상은 멀쩡해요.”
1987년 에이즈 환자를 추모하는 첫 퀄트 전시회에서 호크는 팀의 이름을 찾아낸다. 거기엔 ‘헤아일 수 없이 대단한 팀 로플린’이라고 적혀 있다. 친구냐고 묻는 딸에게 호크는 눈물을 흘리며 말한다. “딸, 아빠 친구가 아니라 사랑한 남자였어.” 아! 그의 눈물에 나 또한 눈물이 났다.
조나단 베일리의 연기는 드라마 전체의 심장을 뛰게 만든다. 눈을 크게 뜨는 순진한 모습부터 맹렬하게 분노하는 모습까지 조나단은 팀 그 자체가 되어 연기한다. 팀은 자기 자신의 진실한 모습을 찾고, 자신의 신앙과 섹슈얼리티를 조화시키고,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호크에 대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을 찾기 위해 애쓴다. 연약하고 따뜻하고 정의로운 팀은 호크보다 더욱 극적인 인물이다. 팀의 종교적 믿음은 진지하게 묘사되며 호크를 사랑하고 갈망하는 만큼 신에 대한 그리움도 커짐을 보여준다.
맷 보머는 호크의 욕망, 갈망, 두려움 등을 잘 묘사한다. 맷의 묘한 미소와 위협적인 분위기는 화면을 장악한다. 호크는 침실 안팎에서 사랑과 정열과 이기심과 놀라운 잔인함을 모두 보여준다. 어쩔 때는 팀이 그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는 것이 더 나을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도 있다. 호크의 유능함과 그가 화면을 꿰뚫을 것처럼 응시하는 장면에선 눈을 떼기가 어렵다. 어느 순간부터 호크는 팀과 있을 때만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된다. 호크의 뿌리 깊은 슬픔, 고통, 고독을 맷은 놀라울 정도로 잘 구현한다.
흑인 게이 저널리스트인 마커스와 드래그 공연자였다가 활동가로 변신한 흑인 프랭키는 인종차별과 동성애 차별을 둘 다 겪는다. 마커스는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흑인 공동체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하고 프랭키와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동성애자를 변태성욕자, 이상성욕자라고 부르던 시대에 마커스가 프랭크를 사랑하기 위해선 큰 용기가 필요했다. 1986년 자신과 다르게 마커스가 프랭키와 함께 살고 있는 모습을 보며 호크는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까?
‘길 위의 연인들(FellowTravelers)’은 현대 사회가 잊고 싶어하는 불편하고 끔찍한 순간들을 묘사하며 성소수자가 누려야 할 권리와 그것의 필요성에 대해 분명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동성의 사랑이 죄가 되었던 시대,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정부, 이웃, 심지어 가족으로부터 공개적인 박해를 당하거나 기본적인 의료 혜택을 받지 못했던 시대가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여전히 호모포비아는 만연하고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성소수자의 권리가 이성애자와 같지 않은 나라가 많다. 그래서 더 ‘길 위의 연인들’이 공감되는지도 모르겠다.(5점 만점에 5점)